폭풍을 향하여
기고: Terrie Chappel / 역자: 한시혁
나는 처음으로 눈폭풍이 오는 순간에 운전을 했다. 아마 당신이 북쪽 지방출신이라면 눈폭풍이라고 부르지 않았겠지만, ‘캘리포니아 소녀’인 내겐 그것이 눈폭풍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남편과 자녀 두명과 함께 콜로라도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대의 차를 더 가지고 오게 되었다. 남편은 아들과 함께, 나는 딸과 조카와 함께 차를 나눠타고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애리조나(Arizona)의 플래그스태프(Flagstaff)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눈이 내렸고, 우리 3명의 소녀들 은 ‘정말로 아름답다!’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웃었다. 허나, 그 노래와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린 탓에 차선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은 먹통이었고, 믿었던 워키토키는 차와 차 사이의 거리가 멀어 무용지물이었다. 방금만 해도 바로 앞에 있었던 남편과 아들의 차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인지했다. 무력했다. 다른 차들이 하나, 둘. 길에서 미끄러져 도랑에 빠졌다.
희끄레한 시야 내로 남편의 차가, 차츰. 보였다. 남편이 나를 위해 속도를 낮춰주었다.
나는 워키토키로 “지쳤어요. 더 이상은 못 가요.” 말했다. 허나 남편은 갓길도 보이지 않고 설령 우리가 갓길에 차를 세운다 해도 다른 차가 칠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하며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모든 상황이 싫었다. 빨리 산에서 벗어나 깨끗한 도로를 달렸으면 싶었다.
남편은 나를 앞세운 후, 바로 뒤에 붙어 끊임없이 워키토키로 통화했다. 남편은 내가 차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어디에서 핸들을 돌려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뒤에서 차가 올 때 미리 알려주어 내가 당황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나는 “얼마나 더 가야해요?” 라 쉼없이 물었고, 남편은 그때마다 “거의 다 왔어.” 대답했다. 그렇게 남편은 매 순간마다 차근차근 알려주며 나를 격려했고, 주님과 남편덕분에 그날 밤, 우리는 안전하게 플래그스태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약 60km 어간의 길이었다.
다음날, 눈이 그치고 햇살이 비쳤다. 남은 여정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집에 가는 길, 내가 달려온 이 길이 나는 ‘삶’과 비슷하다 생각 했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환경은 갑작스레 변하기도 한다. 한 때는 주님을 찬양하지만, 이내 두려운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앞에 두고 걱정하며 초조해하고, 우리 앞에 놓인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는 생각에 함몰된다. 이런 순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시며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를 강건하게 하신다. 또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며 우리가 쓰러지지 않게 하신다. 우리가 천국에 갈 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말자.
내가 너를 훈계하며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가르치고 내 눈으로 너를 지도하리로다.
<시편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