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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회의 숙명(김재욱)

by 서울침례교회 posted Oct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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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숙명

김재욱

*출처: 바이블로그(http://woogy68.blog.me)

 

 

 

1

모든 것은 숙명(宿命)을 지니고 태어난다. 정해진 길로 가는 숙명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체성과 할 일이 있다는 의미의 숙명이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할 숙명, 여자는 해산할 숙명, 촛불은 타오르다 꺼질 숙명, 표범은 평생 반점 무늬를 지우지 못할 숙명을 타고났다는 의미이다.

교회의 숙명은 무엇일까... 교회는 성도들 자체이면서 그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뒤인 신약 때 생겨났다. 구약의 성전은 교회가 아니며 '광야에 있던 교회'(행 7:38)라는 표현도 군부대, 축구단처럼 보편적 '무리'를 뜻하는 용어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신약 교회인지, 구약의 성전인지, 회당인지도 잘 구분하지 않고 그냥 모인다. 어떤 건 구약 식으로, 어떤 건 신약대로 편리하게 활용하면서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들을 굳이 행하느라 분주하다. 
열심히 잘 믿고 좋은 일 하면 그만이지, 무엇이면 어떠랴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하러 오셔서 죽으시고 성전 휘장을 나누어 우리 모두를 왕가의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셨을까... 

정체성을 알지 못하면 자기 할 일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사명이다, 소명이다 하면서 무슨 일을 할까, 무엇이 될까 골몰하면서도 성도, 즉 교회의 사명과 소명, 더 나아가서 우리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을 외면하는 일이 많다.

 



2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이며 살아있는 기관으로서 예수님의 지체가 된다. 교회는 성령님의 전이 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므로 매우 중요한 역사의 주인공이며 인류에 복음을 전달할 매개체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 신약 교회들에게 친히 긴 말씀을 주신다. 당시 존재하던 교회들에 말씀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역사 속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각 교회에 말씀하신 뒤에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라고 매번 덧붙이셨다. 우리도 교회이면, 그리고 들을 귀가 있다면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에베소, 사데, 버가모, 두아디라, 서머나,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이다. 이들에게 주신 말씀을 들여다보면 바로 우리 신약 교회의 '숙명'을 알 수 있다.

물론 교회는 많은 중요한 의무와 역할을 지니고 있지만 그 우선순위는 분명히 다르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교회가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했다거나, 새벽기도나 헌금을 많이 안 했다는 등의 책망을 결코 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일인 구제나 전도를 많이 안 했다는 책망도 없다. 그렇다고 구제와 전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런 것은 기본이니 그보다 더 중요한 근본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를 책망하시거나 혹은 칭찬하실 때, 그리고 주의할 점을 말씀하실 때 거론하신 '교회를 위협하는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면 핵심을 알 수 있다. 교회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위협이 섞여 있으나 어쨌든 교회와 연관된 문제들이다.

1>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이 있음 (2:2)

2>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니골라당이 있음 (2:6)

3>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이 있음 (2:9)

4> 마귀가 성도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고 시험하여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게 함 (2:10)

5> 사탄이 거하는 곳,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에서 순교자가 되어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있음 (2:13)

6>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어서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며 또 음행하게 함 (2:14)

7>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음 (2:15)

8> 자기를 가리켜 여대언자라 하며 주님의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함 (2:20)

9> 이세벨과 함께 간음하는 자들이 있음 (2:22)

10> 사탄의 깊은 곳을 아는, 즉 관계된 자들이 있음 (2:24)

11> 자기 옷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음 (3:4)

12>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음 (3:9)

13> 돈에 만족하여 자신의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 (3:17)

그 밖에도 처음 사랑을 버리는 일들(2:4)이나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3:15) 자들의 문제 등 신앙과 삶에 관한 위기와 함께 권면도 등장한다.



3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마음이 무겁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대단히 버겁고 무겁고 하드코어(?) 적인 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은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고,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치면서 주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해결할 엄두를 못 낼 일들이다. 

사탄 마귀, 
사도인 체하며 성직이라는 권위로 성도를 억압하는 니골라당, 
발람처럼 대언자인 척하며 우상과 음행하는 지도자들,
스스로를 여대언자라 칭하는 이세벨과 같은 자,
교회인 척 모여서 마귀를 숭배하는 이단들,
사탄과 손잡고 스파이처럼 잠입한 원수들, 
목숨을 위협하고 해치는 자들, 
그리고 우리를 가두고 영혼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는 악한 존재들...

한마디로 교회의 숙명은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 사탄 마귀와 그의 하수인들은 성도의 '숙적'이다.

이 항목들에는 오늘날 교회들이 흔히 걱정하는 재정 문제, 장소 문제, 시설 문제, 직분을 세우는 문제, 사람의 문제 등등은 별로 없다. 큰 범주에서는 그 모든 것이 마귀의 방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요즘 교회들이 고심하며 세월을 흘려보내는 일들, 뿌리가 아닌 곁가지에 해당하는 일들은 여기서 제외된다.  

당시 소아시아 교회들의 위와 같은 당면 과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좀 완화됐을까? 이런 말씀들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것이 당시 시대상이라고, 지나간 과거 일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말 그때로 끝이고 이후로 점점 위협의 요소들이 줄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이 될수록 더 위험한 때가 이른다고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예수님은 이 모든 말씀을 성도들의 모임인 무형의 교회에도 주셨지만 '지역 교회'라는 유형의 교회에도 주신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특정 지역명을 거론하지 않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굳이 실존하는 다양한 교회들을 언급하신 것을 보면 다양한 특징을 지닌 모든 시대의 지역 교회들을 지칭하신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자기 일을 아무리 잘해도 진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하고 결국 제 몫을 못하는 것이다. 셜록 홈스가 아무리 많은 사건을 해결해도 모리아티를 이기지 못한다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 진짜 셜록 홈스가 아니다. 모리아티가 홈스의 피할 수 없는 숙적이기 때문이다. 

숙적은 그래서 숙명이다. 그것에 순종하고 극복할 때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의 숙명을 피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남자이며, 해산의 고통을 넘어서려는 각오가 있어야 비로소 여자가 된다. 그런 숙명을 넘어선 사람은 진정한 기쁨과 자기완성을 선물 받는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고통스러운 숙명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선물을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일종의 에너지임을 알 수 있다. 

 



4

각 지역에 세운 유형교회의 또 다른 숙명은, 모든 지역 교회가 극심한 영적 투쟁 속에서 언젠가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심지어 책망을 받지 않은 곳까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숙명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교회의 아버지를 추대하고 우두머리로 만들고, 대대로 신처럼 영존하는 교회 종교를 만들어 적그리스도 짐승의 하수인을 자처한 카톨릭은 심판받고 멸망할 새로운 숙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기 시간을 다했는데도 세습과 편법으로 영원히 살아남고자 하고, 공격해오는 적들과 계속 동침하며 합체해 정체불명의 종교로 거듭나는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심판과 정죄를 피하지 못할 새로운 숙명을 지니게 된다. 

이것이 '숙명'의 속성이다. 
지금은 괴로워도 맞닥뜨려 정면 돌파하면 기쁨과 축복이 주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이 확인되며 견고해진다. 반대로 그 숙명을 외면하면 그때부터 파멸과 자격 상실의 새로운 숙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참된 것은 참다운 것을 지향한다. 참되면 자기 숙명을 똑바로 응시할 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지향점을 정확히 알고 대응하면 그는 숙명을 완수하고 넘어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시각각 많은 영적 위협에 처해있다. 때 되면 운동회와 바자회와 부흥회를 하는 즐겁고 태평하기만 한 교회가 아니라면, 복음을 공격하는 거센 도전과 집요한 방해의 물결이 시시각각 엄습해 올 것이다. 이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가르치고 대응하는 모든 일보다 먼저 그 일이 왜 생겼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공격과 도전과 방해는 무언가를 잘못했거나 미흡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숙명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일을 보면서 비로소 우리가 교회이고 성도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문을 닫을 때까지, 더러 실수로 주님의 책망을 듣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다시 돌이켜 회개하고 일어나 묵묵히 숙적을 향해 진리의 검을 겨누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지금 자기가 선 땅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에 목숨을 거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의롭다 하면서도 교회와 진리를 방해하는 악인의 길에 서 있지는 않은가? 세상이 할 일을 굳이 떠맡아 골몰하지 않는가? 
자기가 지닌 숙명이 곧 자신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심한 방해를 받는 처지이더라도 낙심하거나 놀라지 말고 오히려 기쁨으로 저 일곱 교회들이 졌던 짐을 우리도 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의 복된 숙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나와 함께 내 왕좌에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계 3:19~22)